B-52 가장 폭격기다운 폭격기 - THE SSEN LIG

디펜스 쇼

B-52
가장 폭격기다운 폭격기
글. 이성주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지난 1월 10일 북한의 4차 핵실험 나흘 만에 괌의 앤더슨 기지에서 B-52 폭격기가 한반도로 날아왔다. 한반도 안보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한 번씩 날아오는 폭격기. 그 중에서 B-52는 단골 중의 단골이며, 가장 위압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얼굴마담’이다. 이번 호에서는 B-52 폭격기에 대해 알아본다.

폭격을 가하고 있는 B-52

현존하는 폭격기의 시조새, B-52

미국의 폭격기 삼총사인 B-1, B-2, B-52 이들 중 B-52는 가장 오래 된 기종이다. 좋은 말로는 ‘장수만세’ 나쁘게 표현하자면 ‘노인학대’라고 해야 할까?

1952년에 첫 비행을 했고, 미 공군에 마지막으로 납품된 기체가 1962년이었으니 단순 계산으로도 지금 날아다니는 기체는 최소한 60년이 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사이 업그레이드도 해주고 닦고, 조이고, 기름 치며 손 볼 건 다 봤다 하지만 오래된 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같은 기체를 모는 삼대 전승(傳承)의 진기록도 세우게 된다. 바로 웰시(Welsh) 가문인데, 웰시 가문은 대대로 B-52를 모는 것이 가업(家業)이었다. 할아버지인 돈 스프레이그(Don Sprague)는 냉전 시기 전략 핵폭격 임무를 받고, 아버지인 돈 웰시(Don Welsh)는 베트남전에서 그리고 손자인 데이비드 웰시(David Welsh)는 현재에도 B-52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다. 이 정도면 마르고 닳도록 끌고 다닌다고 해야 할까?(어쨌든 4대 전승은 어려울 듯 하다. 가문의 문제가 아니라 미 공군의 문제다. 이제 슬슬 B-52 퇴역과 대체 폭격기를 탐색 중이다)

몇 년 전부터 일부 자동차 단체를 주축으로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이 벌어져 자동차를 사면 10년을 타야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아직까지 일반인의 인식은 한 5년 타면 자동차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굴러다니는 자동차가 이럴진대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것도 적 영공을 날아가 폭격을 하는 폭격기를 60년 이상 ‘굴린다는’ 게 언뜻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생각한다면, 60년 이상 굴릴 만큼 위협적이란 의미가 된다. 무기체계라는 건 민간에서 사용하는 일반제품과는 수명주기가 다르다.

민간에서 사용하는 물건의 경우는 유행이 지나가거나, 제품의 자연수명이 다 되면 도태되지만 무기체계라는 건 그 효용. 즉,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출시된 지 1년 만이라도 폐기된다. 반면 계속해서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면 100년이 지나도 마르고 닳도록 사용한다. 대표적인 예가 M2 중기관총과 B-52 폭격기다(M2 중기관총의 탄생은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간다).

공중 급유 중인 B-52

잿더미로 만드는 폭격기의 위엄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게 도대체 ‘폭격기’란 게 어떤 존재이기에 아직까지 그 효용이 인정되냐는 것이다. 폭격기의 탄생을 말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Guernica’다.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편에 있던 독일 공군 콘도르 군단이 에스파냐의 도시 게르니카를 폭격한 것에 영감을 얻어 그린 이 작품은 미술사적인 의미와 함께 군사적으로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전까지의 전쟁이란 것은 전선(戰線)에 투입된 병사들의 몫이었지, 후방의 민간인들에게 직접적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비행기가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게르니카 폭격을 통해 전략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는 ‘일상’이 됐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2차 대전 말기 미 공군이 일본의 수도 도쿄에 퍼부은 <도쿄 대공습>만 봐도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1945년 3월 9일 밤 344기의 B-29 폭격기가 도쿄를 쓸고 지나갔는데, 이 단 한 번의 공습으로 25만 동의 가옥이 파괴됐고, 180만 명이 집을 잃었다. 일본의 공식 집계로만 83,793명의 민간인이 죽었고, 4만 명 가량의 중상자가 발생했다(12~20만 명이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다). 도쿄의 1/4이 잿더미가 돼 사라진 것이다. 일본 정부는 도쿄 대공습에 대한 보도 통제에 들어갔지만, 일본인들의 마음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다. 임팩트로 보자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더 충격적이겠지만, 실제적인 피해만을 따지자면 1945년 3월 9일에 있었던 <도쿄대공습>이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B-29란 폭격기가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폭격기라 느껴질 수 있다. 시뻘건 불꽃을 내뿜는 제트 전투기가 마하의 속도로 창공을 휘젓고 다니는 시절에 구닥다리 프로펠러 엔진을 달고 다니는 느리고 무거운 폭격기.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B-29는 미국이 국운(國運)을 걸고 개발한 두 가지 무기체계 중 하나였다. 하나가 그 유명한 ‘원자폭탄’이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B-29’이다.

  • 게르니카 폭격
  • 도쿄 대공습

작전고도 10,200미터, 최대속도 574Km, 항속거리 9,000Km, 작전반경 5,320Km, 방어무장으로 원격제어 포탑으로 감싼 12.7mm 중기관총과 20mm 기관포를 장착했고, 컴퓨터를 활용한 중앙제어 방식을 채택했다. 물론 폭탄 탑재량은 크기에 비해 약간 적었지만 그래도 9톤 가까이를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군은 B-29가 날아오는 걸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B-29가 순항하는 고도까지 전투기를 띄워 올리기도 벅찼고, 설사 교전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이를 공격할 방법이 여의치 않았다. 중무장한 폭격기, 그것도 빽빽이 밀집대형을 짠 상태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이 폭격기를 공격할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B-29의 <도쿄대공습>은 기존의 B-29 운용과는 다른 방법으로 올린 대전과였다. 원래 B-29는 고고도를 날아가 폭탄을 떨어뜨리는 식으로 운용했다. 고도가 높으면, 일본 전투기가 쫓아오기 힘들고, 지상에서 발사하는 대공포 역시 아주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고도에서 떨어뜨리는 폭탄의 명중률은 형편없었다. 유럽에서 B-17을 운용할 때와는 다른 ‘바람’을 만난 것이다. 바로 제트기류였다. 무사시노에 있던 군수공장을 폭격할 때는 폭탄의 명중률이 2%에 그칠 정도로 최악의 명중률을 기록할 정도였다.
결국 당시 대 일본 폭격을 지휘했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명중률이 떨어지는 고고도 폭격을 포기하고 3천m의 저고도에서의 폭격을 구상하게 된다. 덤으로 일반 고폭탄 대신 소이탄을 떨어뜨리기로 했다. 왜? 당시 일본은 목조주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폭탄을 떨어뜨려 폭파시키는 것 보다 불을 붙여서 태워버리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도쿄대공습>은 이렇게 구상되고, 실행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앞에서 말했듯이 대성공이었고, 전략폭격의 위력과 기준을 보여준 최고의 작전으로 기록된 것이다.

B-52의 한계와 효용 가치

도쿄대공습 5년 뒤 북한도 똑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느껴야 했던 열패감과 두려움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북한의 공군력이 괴멸되고, B-52 폭격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북한이 괜히 땅을 파고 들어간 게 아니다(북한군은 부대 주둔지를 만들 때 우선 땅부터 파고 본다. 폭격에 대비한 것이다).

B-52는 B-29의 연장선상에 있는 폭격기이다. 북한이 왜 미국 폭격기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가?
이야기를 다시 돌려보자. 아무리 좋은 폭격기라도 60년 넘게 계속 폭격기를 굴린다는 건 무리가 있지 않을까? 물론, 미국에서도 B-52에 대한 노인 학대를 멈추고 싶어했다. 최초의 시도는 베트남 전쟁 직후였다. 월맹군의 지대공 미사일에 B-52가 번번이 격추되는 걸 보면서(느리고 커다란 폭격기는 지대공 미사일의 좋은 표적이었다) 좀 더 효율적인 폭격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고고도에서 천천히 날아가 쑥대밭을 만드는 방법이 위험하다는 판단이 서자 저고도에서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폭격기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B-1이다. 그러나 이것도 불안했는지, 아예 보이지 않는 폭격기를 생각하게 됐는데 바로 B-2이다.

이런 최신 기체가 있음에도 환갑이 지난 B-52를 아직 현역에 배치한 이유는 뭘까? 다시 말하지만, 무기의 수명주기는 그 효용성과 직결된다. 덤으로 경제적 논리도 작용한다. B-1은 그 전략사상이 어중간한 상태로 개발됐다는 한계(스텔스와 비스텔스의 중간 정도의 위치), B-2는 성능은 좋지만, 너무 비쌌기에(B-2의 무게가 45톤인데, 같은 무게의 순금과 같은 가격이다) 마음대로 찍어낼 수 없었다. 결국 후배 폭격기들이 나왔지만, B-52는 계속 날아오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륙하고 있는 B-1 폭격기

B-52의 존재 이유

시대가 변해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절이 됐음에도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미사일은 1회용이고, 비싸다. 전투기나 전폭기가 떨어뜨리는 폭탄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시대 변화에 따라 B-52나 다른 폭격기도 폭탄이 아니라 미사일 발사 모기의 역할을 하며, 끈질기게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았기에 지금까지 폭격기의 명맥을 이어나간 것이지만, 폭격기 본연의 임무인 ‘폭격’의 의미가 쇠퇴한 건 아니다.

폭격기, 아니 B-52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제1차 걸프전 당시 B-52는 80여 기가 동원돼 1,600여 회 출격 총 2만 5천 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는 다국적군이 투하한 전체 폭탄량의 40%를 차지한다. 당시 이라크군은 B-52 폭격기가 내일 폭격한다는 예고에 놀라 진지를 버리고 도망을 갈 정도였다.

전장 환경이 달라지고, 전투의 방식이 대테러전과 같은 비정규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지금까지 B-52는 이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았고, 그 덕분에 60년이 넘게 일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제1차 걸프전에 투입된 B-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