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방지원을 넘어 근접전투까지, 여군의 진군은 계속된다 - THE SSEN L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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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지원을 넘어 근접전투까지,
여군의 진군은 계속된다
글. 김수빈 (허핑턴포스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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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비중은 계속 확대되어 왔다. 이런 추세가 기존의 성 역할 관념과 충돌하면서 문제를 빚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여군의 역사는 상당히 긴 편임에도, 특히 전장의 최일선에서 직접 살상을 수행해야 하는 전투병 병과에 여성을 투입하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갑론을박의 대상이다. 최근 세계적인 추세는 전투병 병과에 걸려있던 여성에 대한 빗장이 차츰 풀리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레이 앤 헤스터 미 육군 주방위군 중사. 2005년 이라크에서 적군의 습격에 맞서 용맹하게 싸운 것을 인정받아 은성훈장을 받았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여성이 근접전투로 훈장을 받은 최초의 사례다.

역사 속의 여군

현대전에서 여군의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되면 거의 모든 국가에서 여군을 동원했는데 여성은 이때부터 상당히 폭넓은 군의 영역에서 활동해왔다. 주로 의무나 행정에서 활약했지만 영국과 독일의 경우, 대공포 운용에도 여군이 참가했다. 여군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소련의 경우에는 스나이퍼로 활약한 여군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스나이퍼로 활약한 로자 샤니나. 공인된 기록으로만 59명을 쓰러뜨렸다

대한민국 국군만 하더라도 오랜 여군의 역사를 자랑한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9월 6일에 여군 병과를 창설하여 운영해왔고, 90년대 후반부터 사관학교에서도 여생도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형식적으로 여군에 대한 병과 제한은 존재하지 않지만 아직까지 유사시 최일선에 투입되는 병력에 여군이 포함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성에게도 의무복무를 부과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인 이스라엘도 2000년 이전까지는 상황이 비슷했다. 주로 간호, 운전, 기술지원 등을 비롯한 후방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2000년 이후에는 군복무 평등법으로 전투지원이나 경보병 임무 등에도 투입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 비율은 4% 미만으로 낮은 편이다.

의외로 중동의 국가에서도 여군을 집중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볼 수 있는데 여성으로만 구성된 친위대를 거느렸던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그 중 하나이다. 아직까지도 내전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시리아도 여성으로만 구성된 특공대원들을 많이 육성했다. 과거 카다피가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 국방장관에게 선물로 준 시리아 여성 특공대원의 특공 무술 시연 비디오에는 여성 특공대원이 살아있는 뱀을 물어뜯고 구워먹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시리아 여성 특공대원의 특공무술 시연 영상

확장되는 여군의 역할

최근에는 기갑·보병 병과를 비롯한 근접전을 수행하는 병과에 여성도 허용을 하는 쪽으로 방침이 바뀌는 추세다. 이를 선도하는 것은 물론 미국이지만 가장 최근의 사례는 바로 영국이다. 데이빗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 7월 초 육군의 제안을 수용하여 여성의 근접전 병과 참여 제한을 해제했다.

“우리 군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반영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번 조치는 군의 모든 인재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여성이 군 내의 모든 역할에서 복무할 수 있는 기회를 증가시킬 것입니다.” 캐머런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국군은 단계적으로 여성의 근접전 병과 제한을 풀 방침이다. 하지만 가장 큰 장애요소는 정부의 계획이 아니다. 바로 체력검정이다. 영국 육군의 자체 연구에 따르면 영국 육군에 복무하고 있는 여성 7천 명 가량 중 보병 병과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체력검정을 통과할 수 있는 인원은 5% 미만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군이 극복해야 할 과제

체력 문제는 여군의 전투병과 복무 여부에 관한 논쟁에서 가장 심각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여성의 신체적 조건은 남성에 비해 근접전의 격렬한 전투에 불리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여군에 요구하는 체력 조건은 동일한 병과의 남성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꽤 낮다. 거의 유일한 예외라면 스위스군을 들 수 있는데 스위스군은 2007년부터 남녀 군인 모두에게 동일한 체력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미 해병대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9개월간 혼성 전투부대를 갖고 실험을 했는데 전투를 계속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부상을 입을 확률이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두 배나 높았다. 전투 상황을 재현한 실험에서 여성의 사격 정확도는 남성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또한 장애물을 처리하거나 전장에서 부상을 입은 아군을 옮기는 등의 기초적인 전투 업무의 수행도 남성에 비해 떨어졌다.

이는 미 해병대의 다른 실험에서도 드러난다. 해병대는 2012년부터 보병장교 훈련과정(IOC)을 여성 장교들에게도 개방했다. 80일 이상 계속되는 이 혹독한 훈련에 현재까지 30명의 여성 해병대 장교들이 도전했지만 지금까지 이 훈련과정을 통과한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럼에도 도전은 계속된다

미 해병대 최초로 보병 훈련과정을 통과한 3명 중 2명인 줄리아 캐롤 일병(좌)과 크리스티나 후엔테스 몬테네그로(우)

여군들은 조금씩 장벽을 허물고 있다. 소총병, 기관총병 등 보병 특기를 부여 받기 위한 필수 코스인 59일짜리 해병대 보병 훈련과정(ITB)에 2013년 11월, 최초로 3명의 여성이 훈련을 이수했고 현재까지 230명이 넘는 여성 해병대원들이 이를 이수했다. 그리고 지난 5월에는 처음으로 여성 해병대원 두 명이 보병 병과로 특기를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미 육군은 지난 4월 최초로 22명의 여성을 보병 및 기갑장교로 임관시키기도 했다.

이는 미국이 2016년부터 여성이 모든 최전방 전투 임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단순히 보병만이 아니다. 육군 특전사(레인저, 그린 베레)부터 네이비실까지 실로 모든 부대의 문호를 개방했다. 물론 요구되는 체력조건은 남성과 동일하다. 네이비실은 이번 9월부터 여성도 훈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신청한 여군은 없다고 한다.

한편 한 여성 해병 부사관이 지난 3월 미 해병대 특전사령부(MARSOC)에 지원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8월부터 시작되는 6주짜리 훈련을 성공적으로 이수하면 그는 해병대 역사상 최초의 여성 특전대원이 된다. 사실 해병대 보병장교 훈련과정 등에 여성들이 지원한 결과들을 보면 성공을 예감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왜 여군에 대한 군내의 문호가 이렇게 전격 개방되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여성의 권익 향상으로 인해 군내에서도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인식이 선진국 위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만으로 군을 운영하기에는 점점 병력자원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2000년대 초, 당시에는 여성을 여단급 미만의 전투부대에 포함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었으나 엄격히 적용이 되지 못했다.

전문가 중에는 여군의 전투 투입이 실제로 작전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리라고 보는 이도 있다. 영국의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의 한나 브라이스는 이번 조치에 대한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쟁은 단지 남자들에 의해서만 수행되는 것이 아니며 남자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전장은 이미 20세기의 먼 전선에서 벗어나 도시 환경 가까이 이동했으며 그 결과 단순히 군인만이 아닌 사회 모든 구성원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군대가 전장과 그 너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이해하고 영향을 미치려면 모든 군사 영역에서 여성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지 어린이와 여성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 데 여성은 현저한 성과를 보였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가족관계가 아닌 남성이 여성에게 말을 걸 수 없는 현지의 풍습 때문이기는 하지만 도시 환경에서 펼쳐지는 전장에서 정보 수집과 전투가 별개로 구분되기란 불가능하고 여성의 공감 능력이 통상적으로 남성보다 높다는 것을 떠올려 볼 때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견해이다.

물론 이는 아직까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견해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성의 전투참여를 가로막던 가장 큰 장애물인 신체적 차이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점차 그 의미가 흐릿해질 것임은 틀림없다. 이를테면 록히드마틴과 레이시온 등에서 개발하고 있는 외골격 수트 같은 것을 보라. 여성의 전투참여에 관한 논의에서 지배적인 이슈인 신체적 조건 문제가 기술적으로 보완이 되면 그때부터는 여성의 장점이라는 것이 더욱 부각될 수 있을 수 있다. 사실 LIG넥스원의 LEXO(근력증강로봇) 개발 등은 이러한 발전을 앞당기는 것이다.